평범한 가정주부가 시집살이 탈출을 위해서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디자이너가 된 1세대 진태옥 디자이너입니다.
1965년 브랜드 프랑소와즈를 설립해 한국에 기성복 시대를 연 주인공이지만 학창시절에는 법관이 꿈이었던 여학생이었습니다.
디자이너가 될 운명이었던지 중앙여고 시절 학생회장으로 전교 1,2등을 다투면서도 서울대 법대 입시에 낙방했고 결국 서울대 총장실 비서로 3년동안 일하다 25세에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양칫물과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는 고된 시집살이에 돌이 지난 아이를 뒤로하고 28세에 국제복장학원에 등록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시집살이가 만든 1세대 패션 디자이너의 인생을 소개합니다.

진태옥 디자이너 프로필
- 영어 : Jin Tae-ok
- 생년월일 : 1934년 6월 20일 (나이 92세)
- 고향 : 함경남도 원산 / 국적 : 대한민국
- 키 : / 종교 :
- 학력 : 국제복장학원 졸업 (1963년)
- 가족 : 남편, 자녀
- SNS : 인스타그램 jinteok_official / 페이스북 : / 유튜브 : / X : / 블로그 :
- 공식 홈페이지 : jinteok.com
디자이너 진태옥 수상 이력
- 1996년 – 무역의 날 대통령상
- 2007년 – 화관문화훈장
진태옥 디자이너 주요 이력
- 1934년 –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
- 1962년경 – 28세에 패션 공부 시작
- 1963년 – 국제복장학원 졸업, 이종천패션연구소에서 실무 수련
- 1965년 – 브랜드 프랑소와즈 설립
- 1978년 – 아동복 사업 진출
- 1983년 – 남성복 사업 진출
- 1988년 – 서울올림픽 유니폼, 아시아나항공 유니폼 디자인
- 1989년 – 서울패션협회(SFA) 창단 멤버, 1993년까지 초대 회장
- 1990년 이후 –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컬렉션 매회 참가
- 1993년 – 한국인 최초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참가
- 1994년 – 뉴욕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입점, 파리 부티크 개점
- 1996년 –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 1999년 – 파이돈 선정 ’20세기를 빛낸 패션인 500인’ 포함
- 2005년 – 아트북 <Beyond Nature> 발간
- 2007년 – 화관문화훈장 수훈
- 2014년 – 2015 S/S 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 참가
- 2015년 – 디자이너 데뷔 50주년 특별전 <앤솔로지(Anthology)> 개최, 파리 장식미술관 <Korea Now!> 전시 참여
- 2016년 – 2017 S/S 헤라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 참가
- 2017년 –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 참가
- 2020년 – 코오롱FnC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협업 전시
- 2021년 – 온라인 이지웨어 브랜드 JTO 론칭
브랜드 진태옥 정보
- 설립 : 1965년
- 국가 : 대한민국
- 산업 : 패션
- 창업자 : 진태옥
- 링크 : http://jinteok.com/
프랑소와즈는 여성복에서 시작해 1978년 아동복, 1983년 남성복으로 사업을 넓혔습니다. 2021년에는 온라인 이지웨어 브랜드 JTO를 론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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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가 만든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1934년 6월 20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한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지만 중앙여고 시절에는 공부잘하는 법관이 꿈이었던 여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법관이 되려던 꿈은 서울대 법대 입시에 낙방하면서 깨졌고 서울대 총장 비서로 3년간 일하다 결혼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결혼과 함께 시어머니가 가정부를 내보냈고 그날부터 시작된 1950년대의 시집살이는 가혹했습니다.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양칫물과 세숫물까지 떠다바치는 생활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결심에 몰래 의상학원을 다녔지만 그마저도 숙제를 하는 재봉틀 소리에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재봉틀 소리를 죽여가면서 밤새 숙제를 하는 열정에 결국 시부모들도 두 손을 들었고 여고생 시절 들렀던 노라노 양장점에서 옷을 맞춘 뒤 집에 와서는 입지도 않은 옷을 뜻어서 패턴을 그리며 독학으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습니다.
해외 진출의 1등 도우미 진태옥 남편

28세에 패션 공부를 시작해 1963년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하고 난 뒤 1년간 이종천 패션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혔고 1965년 분가하면서 드디어 시집살이에서 벗어면서 이화여대 앞에 작은 양잠점 ‘디쉐네’를 열었습니다.
파리 다방 1층에 있던 의상실에서 세련된 도시풍의 옷을 만든 것이 인기를 끌면서 3년 뒤 패션 브랜드 프랑소와즈로 재탄생하면 1세대 디자이너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양 패션에서 배경색으로 쓰던 흰색을 작품 전면에 내세워 흰색 셔츠만으로 패션쇼를 여는등 기성복 패션의 선구자가 됐습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무역업을 하는 남편 덕에 무역회사 이사로 등록해 유럽과 미국을 3개월 동안 일주했고 이때 기성복의 필요성을 깨닫고 귀국하자마자 고객 평균 치수를 산출해 당시에는 생소했던 기성복 치마와 블라우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부터 대량생산체제를 시작했고 이후 1978년 아동복 ‘베베 프랑소와즈’, 1983년 남성복 ‘프랑소와즈 옴므’로 영역을 넓히면서 대한민국 패션에 기성복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시아나 항공 유니폼

88 서울올림픽 공식 유니폼을 디자인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것 말고도 원조 아시아나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한복 고유의 장색과 색동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니폼은 이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유니폼이 가장 아름다운 항공사’로 아시아나를 꼽기도 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자긍심이 얼마대단했던지 1984년 뉴욕 유명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의 바이어를 무작정 찾아가서는 비싸다는 말에 ‘나는 한국 제일의 디자이너고 내 옷은 작품’이라며 돌아섰습니다. 이후 뉴욕에 점포를 열었을 때 값을 깎으려는 바어에게 ‘내 옷을 살 자격이 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호통을 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파리 진출의 도전과 역사
1993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했고 이후 1993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습니다. 1994년에는 뉴욕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에 입점하고 파리에 부티크를 열었습니다.
파리에서 처음 컬렉션을 열었을 때 르몽드 기자에게 “진태옥은 과연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도전이었고 이후 이영희, 이신우와 함께 1990년대 파리 패션계에 도전했지만 당시에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파이돈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패션인 50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습니다. 파이돈이 펴낸 <더 패션 북(The Fashion Book)>에도 한국인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수록됐습니다.
프로들은 나이가 없어요 ~
2005년에는 아트북 <Beyond Nature>를 발간했고, 2014년 이후 서울패션위크 서울컬렉션에 참가했습니다.2015년 10월 15일 헤라서울패션위크 개막 전날 특별전 <앤솔로지>를 열어 50년 작업을 10가지 테마로 나누고 대표작 80여 벌을 전시했습니다.
같은 해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열린 파리 장식미술관 <Korea Now!> 전시에도 참여했는데 해외 패션쇼 피날레에 흰색 의상을 모아 선보이자, 세계적인 패션 평론가 수지 멘키스가 찾아와 “네 작품은 시(詩)다”라고 극찬했습니다.
50년 디자이너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이후부터는 옷으로 시를 쓰고 싶었다며 인터뷰 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대에는 코오롱FnC 래코드와 협업하고 2021년 JTO를 론칭하는등 90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93세 나이 진태옥 디자이너의 도전
90대에도 꼿꼿한 허리에 모델 이소라가 건강 비결을 묻자 아침 7시에 일어나 신문 2개를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고 주 2회 100m 수영을 하며 스트레칭 20분 – 근육 운동 30분 – 3.5km 걷기 등 철저한 관리로 건강도 프로로 관리하는 디자이너입니다.
1980년대에는 파리 패션계에 도전해 5000원이면 살 수 있는 브라톱을 150 달러에 팔았고 83세에는 연극 메디아 의상 디자인을 맡아 생애 처음으로 연극 의상에 도전했습니다. 2026년에는 유퀴즈 온더블럭 방송에 출연하는등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끝으로 …
앙드레김이 무섭다고 할 만큼 패션 업계에서 단호한 성격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입니다. 피팅 모델을 쓰면 옷의 진짜 느낌을 모른다며 직접 4차례 피팅까지 하면서 여유분도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1950년대 가부장적인 시대에 여성이 집안에만 있던 시절에 디자이너의 길에 도전해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로 남은 데에는 “기본을 모르는 유희는 졸작”이라며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기본기와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직업 정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